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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46_나르시시스트의 피해자가 또 다른 나르시시스트가 되기도 할까?

 

목차

  •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받은 상처, 반복되는 이유
  • 피해자였던 내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 생존을 위한 자기애, 과잉방어가 만들어낸 가면
  • '자기애성'과 '나르시시즘'의 차이
  • 관계 속 역할 고정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굴레
  •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치유
  • 피해를 끝내기 위한 선택, 그리고 책임

 

나르시시스트의 피해자가 또 다른 나르시시스트가 되기도 할까?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혼란과 분노, 슬픔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종종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게 되죠. ‘내가 저 사람과 너무 닮아 있는 건 아닐까?’ ‘나도 누군가에게는 비슷한 방식으로 상처를 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심리학 연구와 상담 현장에서는 나르시시스트의 피해자 중 일부가 나르시시즘적인 성향을 내면화하는 경우가 있다고 보고합니다.

피해자였던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되는 이 복잡한 심리 구조, 지금부터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받은 상처, 반복되는 이유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가장 흔한 패턴은 심리적 착취와 자기 의심입니다. 처음에는 따뜻하고 매력적인 사람처럼 다가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타인을 통제하고, 감정을 조작하며, 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만 만족합니다. 이들은 상대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면서도, 자신은 피해자인 척 행동하곤 하죠.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점점 자존감을 잃고, 자신의 감정을 부정당하며, “내가 문제였나?”라는 자기 의심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한 번의 이별로 끝나지 않고, 오랜 시간 정서적 후유증을 남깁니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나 보호자가 나르시시스트였던 경우, 이 경험은 성격 형성과 자아정체성의 뼈대에 깊숙이 영향을 줍니다.

이런 경험은 이후 인간관계에서 비슷한 관계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거나, 반대로 절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과잉방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피해자였던 내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바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때입니다.

자신이 겪은 고통이 너무 크고 반복될수록,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은 커지게 됩니다. 이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을 택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감정을 드러내면 약점이 된다
  • 누군가에게 기대면 또 상처받는다
  • 내가 중심에 서야만 안전하다

이런 믿음은 겉으로는 강하고 독립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상처에 대한 방어기제일 뿐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상처를 정당화하며 상대를 조종하려는 성향을 갖게 되죠.

이들은 “나는 예전에 너무 착했기 때문에 당했다”, “이제는 나도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이 말이 실제로는 타인을 소외시키는 새로운 방어벽이 되기도 합니다.

 

생존을 위한 자기애, 과잉방어가 만들어낸 가면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응성 나르시시즘(reactive narcissism)'이라고도 설명합니다. 타인의 비난이나 평가, 상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기 중심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어적 자기애의 한 형태죠.

이런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 “나는 이제 상처받지 않아. 냉정해졌거든.”
  • “사람은 믿으면 안 돼. 다 이용하려고 해.”
  • “내가 더 잘난 사람이어야 억울하지 않지.”

이러한 태도는 실제로 그 사람을 보호해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고립과 공허함을 심화시킵니다. 결국 이들은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 방식이 또 다른 형태의 정서적 착취나 심리적 거리두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게 됩니다.

 

'자기애성'과 '나르시시즘'의 차이

이쯤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건강한 자기애’와 ‘병적인 자기중심성’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 건강한 자기애는 자기 감정과 욕구를 인식하고 표현하면서도, 타인의 감정 역시 존중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 반면 병적인 나르시시즘은 타인을 도구화하고, 자신이 존중받아야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심리 구조입니다.

피해자였던 사람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건강한 자기애로 나아가는 대신 과장된 자존감과 조작적 관계 패턴을 채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스스로도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관계 속 역할 고정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굴레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피해자는 늘 ‘무력한 사람’, ‘희생자’,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정체성은 한편으로는 관계 안에서 역할을 고정시켜주는 기능을 하죠.

문제는 이런 역할 고정이 너무 오래되면, 누군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더라도 미리 방어하거나, 상대를 밀어내거나, 혹은 먼저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패턴이 굳어진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관계에서도 반복적인 갈등이 생기고, 점점 ‘나는 역시 혼자가 편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상처받고,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상처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으면, 우리는 무의식 중에 과거의 나르시시스트를 모방하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치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과거에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그 상처를 방어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세요.

  • 나는 지금 누구처럼 행동하고 있나?
  • 누군가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조종하고 있진 않은가?
  •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만든 태도가, 타인에게 상처가 되진 않나?

이런 질문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며, 때로는 심리상담과 같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나르시시스트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피해를 끝내기 위한 선택, 그리고 책임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르시시스트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어렵고 까다로운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이 나쁘거나, 잘못되어서가 아닙니다.
회복되지 못한 상처가, 자기 방어를 위해 내면을 굳게 만든 것일 뿐입니다.

이제는 그 상처를 들여다보고, 진짜 감정을 회복할 차례입니다.

  • 때론 분노 대신 슬픔을 느껴도 괜찮고,
  • 완벽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며,
  • 진짜 자기 자신으로 관계를 맺어도 충분히 안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피해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단지 그 사람을 잊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내 안에 남긴 방식과 언어, 감정의 패턴을 바꾸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시작한 지금, 당신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